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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국내

서울 가볼만한 곳 명동성당과 이회영, 이시영 집터

2021. 7. 29. by 세싹세싹

 얼마 전 오랜만에 다녀온 서울 명동, 이곳에 왔으면 다른 곳은 몰라도 명동성당은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서울에서 가볼 만한 곳 중에 하나인 명동성당은 건축물로서 의미가 있고, 근현대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다. 근처에 오시면 한 번쯤 가보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다. 명동성당은 사적 258호로 정해져 있어 이미 그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근처에 있었던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장소, 이회영, 이시영 집터도 우연히 가게 되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있어 정말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인데 이곳 명동에 집터가 있었다니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명동성당

명동성당-전경

 해가 쨍쨍하고 날씨 좋았던 이 날, 파란 하늘과 명동 성당이 어우러져서 경치가 참 좋았다. 조금 높은 곳에 있어서 갈까 말까 고민이 살짝 되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올라가 보기로 했다.

명동성당-안내문

 명동성당은 1898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본당으로서, 우리나라 천주교에 있어서 상징적이고 중요한 장소이다. 이 터는 초기 신자들의 공동체가 있던 명례방 근방으로, 교과서에도 나오는 김대건 신부가 활동하던 부근이라고 한다. 처음에 건립할 당시에 언덕 아래 왕실의 어진이 있는 영희전이 있어 정부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여러 우여곡절로 공사가 지연되긴 했지만, 1892년 착공을 시작해 1898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명동성당-설명

 옆에는 서소문 순례길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명동성당에서 출발해 순교성지인 약현성당으로 끝나는 길이었다. 천주교 신자 분들은 이미 이 길을 많이 다녀오셨을 것 같았다.

성당안내두

  계단을 걸어 위로 올라오니 성당 안내도가 보였다. 대성당 건물 외에 여러 건물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명동성당

 명동성당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바로 민주화 운동의 성지라는 것이다. 1976년 3월 1일에는 민주 구국선언이 발표되기도 했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폭로했던 1987년 5월 18일 추모미사가 이곳 명동성당에서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 때에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성당과-주변풍경

 좀 더 가까이 가서 성당을 살펴보았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고딕 양식 성당 중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을 초기에 설계한 사람은 코스트 신부였으니 짓는 도중 사망하여 푸아넬이 이어받아 완공했다고 한다.  

명동성당-정면

 고딕에서 흔히 쓰이는 첨두식 아치를 볼 수 있다. 명동성당은 정확하게는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고딕 양식은 아니고 근대에 되살린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명동성당-옆면
명동성당

 현재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예전에 크리스마스 때 명동성당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문이 열려 있어 멀리서나마 미사를 볼 수 있었다. 다시 그때처럼 명동성당의 문이 열리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이회영, 이시영 6형제 집터

이회영집터

 명동성당 바로 근처 골목 우당 이회영길이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이곳이 이회영 선생님과 어떤 관련이 있어서 이회영 길이 되었을까 궁금해 길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그 길 따라 걷다 보니 이회영, 이시영 6형제 집터를 만나게 되었다.

이회영-기념비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가문은 본래 재산도 많고, 명망 높은 가문이었다. 하지만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침탈이 심해지자 망명을 결심했다. 그 많은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와 서전서숙을 세우게 된다. 이후에는 신흥 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을 양성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신흥 무관학교가 일본의 탄압으로 실패한 뒤에도 항일운동에 계속 힘써 1931년에는 항일구국 연맹을 창설하기도 한다.

이회영-동상

 

 실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있어 지대한 공을 세운 가문인 셈이다. 사실 혼자만 뜻을 품고 독립운동에 나서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형제들이 모두 뜻을 모아 독립운동에 힘썼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 따지면 정말 좋은 내 땅에서 떵떵거리면서 잘 살 수 있는 위치였는데, 이 좋은 땅을 버리고 가셨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가진 것을 놓치기 싫어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떠나려고 보니 이회영 선생님의 동상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그 거미줄을 남편이 치워주며, "이런 거라도 해드려야지"라는 말을 했다. 후세에 태어난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이분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만큼은 계속해야할 것이다. 오랜만에 명동에 방문하여 의미 있는 곳도 돌아보고 좋은 시간 보내고 온 것 같다. 우리와 가까운 곳, 서울에도 정말 의미 있는 장소가 많이 있다는 걸 느꼈다. 시간 될 때 하나씩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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